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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양-마음으로 먹는 밥
인생이란 곧 밥공부이자 마음공부이다

호산 스님 지음

2005/05/03 발행 | 216 쪽 | 신국판변형

ISBN 89-91239-25-0 (03810)

그대는 발우에 담긴 뜻을 아는가

이 음식이 어디서 왔는고 내 덕행으로는 받기 부끄럽네.
마음의 온갖 욕심 버리고 몸을 지탱하는 약으로 알아
도업을 이루고자 이 약을 받습니다.

스님들이 공양을 할 때 암송하는 ‘오관게(五觀偈)’를 한글로 풀어쓴 것이다.
오관게에는 이른바 ‘공양 정신’이 잘 드러나 있다.
공양이란 무엇인가. 국어사전을 찾아보면 “중이 하루 세 끼 음식을 먹는 일”이라는 뜻풀이가 나온다. 그러나 보통은 “우리 이웃의 모든 사람들에게 필요한 어떤 물건이나 참다운 진리의 가르침을 베풀어주는 것”이라는 보다 넓은 의미로 쓰인다. 그러므로 ‘밥’에 대한 단상과 ‘베푸는 삶’에 대한 성찰을 아우르는 호산 스님의 에세이집 제목이 《공양》인 것은 너무나 자연스러운 귀결일 것이다.

해인사에서 출가해 현재 서달산 달마사 주지로 계시는 호산 스님은 마흔네 편의 글과 직접 그린 수채화들을 통해, 각박한 현대인들에게 인생이란 곧 ‘밥공부이자 마음공부’임을 나직히 역설한다. 그렇다고 해서 스님이 늘 훈계조의 이야기만 한다고 생각하면 그건 오해다. 박제된 종교인이 아닌, 이 시대를 함께 살아가는 가까운 이웃으로서의 모습을 보여주는 호산 스님의 소박한 일화들은, 산중 스님들의 내밀한 일상에 대한 일반인들의 호기심을 채워주는 동시에 작지만 큰 깨달음을 전해준다.

이를테면 스님의 ‘자장면’에 대한 사랑은 우리를 미소짓게 한다(본문 p.75). 스님들은 유난히 면 음식을 좋아해서 ‘승소면(僧笑麪)’, 즉 “스님들은 면 음식만 주면 좋아서 빙그레 미소짓는다”는 말도 있지만, 유독 자장면을 좋아하는(물론 돼지고기를 뺀) 호산 스님은 그로 인해 종종 오해를 받기도 한다. 속가의 누님과 함께 모텔 건물에 위치한 뷔페에 들러 식사를 마치고 나오다 동료 스님을 만나 괜한 오해를 살 뻔한 어느 스님의 에피소드도 읽는이를 즐겁게 한다. 게다가 속세에서 칼국수 장사를 하다 망한 적이 있는 공양주에게 미안해, 절에서 칼국수 해먹자는 소리를 차마 못하는 스님의 모습은 친근한 우리네 이웃의 모습 그대로다. 또한 절집안의 후원(부엌)에 대한 스님의 설명은 보통 사람들의 궁금증을 풀어준다. 국을 준비하는 소임을 맡은 이를 ‘갱두’라 하는데, 갱두 소임자가 국을 끓일 때 외우는 진언이 ‘옴 맛나맛나 사바하’라는 스님의 익살스런 설명은 천진난만한 장난꾸러기 동자승을 연상케 한다.

그리고, 돈 한 푼 없는 빈털터리임에도 불구하고 스님에게 따뜻한 밥 한 끼 대접하고 싶어 스님을 끌고 낯 모를 이의 장례식장에 가 태연히 밥을 권하던 고향 선배의 추억을 말하며 이제는 세상에 없는 선배를 그리워하는 모습, 신문에 실린 부실 도시락 기사를 보며 학창시절, 양철물통에 도시락을 모두 모아 담고 밥을 썩썩 비벼 먹던 정겨운 추억을 떠올리는 모습은 스님의 따뜻한 심성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그러나 그 무엇보다도 우리의 마음을 짠하게 만드는 건 돌아가신 어머니에 대한 스님의 사랑과 연민이다. 가난한 집안 살림 때문에 광산에서 일하다 이십대 초반의 꽃 같은 나이에 사고로 죽은 큰형. 그리고 그 맏아들에 대한 죄책감으로 평생을 술로 버티다 오십도 안 돼 세상을 뜨신 어머니에 대한 스님의 추억은 자연스레 밥에 대한 회한으로 이어진다. “네 형, 따뜻한 밥 한 그릇 제대로 못 먹이고......”라는 말을 늘 달고 살며, 형제들에 비해 체격도 작고 계집아이처럼 어머니의 일을 잘 도와주던 어린날의 스님을 각별히 측은해하시던 어머니, 일곱 남매를 키우느라 이가 망가져 무를 숟가락으로 긁어 드시는 게 유일한 군것질이었던 어머니...... 추억 속의 그 어머니에게 스님은 이렇게 말한다.

그래요, 어머니.
당신 말씀처럼 그렇게 살고 있어요.
노래 잘하고 음식 잘하고 마음씨 곱고 예쁜 색시 얻을 거라던
당신 말씀대로 장가 대신 출가해서
대궐 같은 집에 살면서
염불 잘하는 스님들 계시고
공양간에는 음식 잘하는 공양주 있으며
마음씨 곱고 예쁜 보살님들이 너무 많습니다.
모두가 어머님의 사랑의 공덕이며, 이제 그 공덕을 회향하고자 합니다.
부디 서방정토 아미타 부처님 곁에서 극락왕생하십시오.

100퍼센트 산소만 마시고 사는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거짓과 위선에 길들여진 현대 사회에서 스님의 솔직함과 깨어 있는 정신이 우리 스스로를 돌아보게 한다. 정신없이 바쁜 일상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와 마시는 한 잔의 차처럼, 평화롭고 청정한 삶에 대한 갈증을 적셔줄 스님의 글과 함께 그간 잊고 살았던 삶의 여백을 느껴보자.

저자 - 호산 스님
해인사에서 출가했다. 해인사 승가대학을 졸업했으며, 월간 《해인》편집위원 및 출판부장을 역임하며 글과의 인연을 시작했다. 고려대장경 연구소 보존부장 및 기획실장을 맡기도 했다. 각종 매체에 따뜻한 글과 서정적인 그림을 발표하면서 부처님의 삶과 가르침을 전해왔다. 짧지 않은 운수행각을 멈추고 현재는 서울 달마사 주지로 자리하고 있다.

1. 발우에 담긴 뜻
발우공양 / 수행자의 밥값 / 마음에 찍는 점 / 오후 불식 / 노파와 밥도둑 / 그런다고 주나봐라 / 비움으로써 채우다 / 산수걸인 / 탁발의 미학 / 응량기와 마음밭 / 맛있는 밥 짓는 법 / 기꺼이 밥을 굶은 비구

2. 절집에 산다는 것
어머니와 쌀밥 한 그릇 / 스님과 자장면 / 도시락 단상 / 인사동에서 / 쌀 한 톨의 무게 / 뷔페에서 생긴 일 / 어리석은 나그네 / 밥 많이 먹읍시다 / 최고의 밥 / 그리움의 잔상 / 배고프면 밥 먹는 도리 / 모이는 간편하고 적게 / 밥맛 나는 사람 / 정월대보름 단상 / 몸도 좋고 마음도 좋고 / 밥상에서 싹트는 사랑

3. 산중에서 바라보는 세상
까치밥과 도롱뇽 / 그림으로 대신한 제삿상 / 한솥밥 먹는 사이 / 보살의 마음 / 밥심 / 잃어버린 손맛 / 단식과 다이어트 / 흥부의 뺨에 붙은 밥알 / 정성이라는 맥 / 밥으로 이루는 통일 / 사랑의 밥, 대화 / 밥에도 도가 있다 / 아름다운 회향 / 콩밥과 정치인 / 함께 하는 생명 나누기

스님들이 발우 공양을 준비하는 과정은 진지와 행위로 나뉜다. 진지는 공양물, 즉 밥과 반찬, 국을 분배하는 과정이고, 행위(또는 행익이라고도 한다)는 공양을 마치고 나서 발우를 거두는 모든 과정을 말한다. 보통 밥 먹는 일을 높여 불러 ‘진지’라고 하는데, 이는 스님들의 공양에서 나온 말이다.
그렇게 공양이 끝나고 나면 지옥 아귀에게도 공양을 나누어주는 절수게(節水偈)를 외우고, 발우 씻은 물을 퇴수통에 따라 붓는다. 이때 조심해야 할 것은 아귀들은 오로지 스님들이 공양한 뒤에 남긴 물만을 마실 수 있는데, 몸집은 수미산만하고 목구멍은 바늘구멍보다 작아 혹여 음식 찌꺼기가 목으로 들어가면 아귀의 목에서 불이 나 죽기 때문이다. 비록 아귀일지라도 목숨이 귀하기는 마찬가지, 하퇴퇴수(退水) 한 모금도 청수(淸水) 못지않게 정갈히 하는 게 절집안의 정서다. 절수게의 내용은 이렇다.

내가 발우를 닦은 이 천숫물은 하늘의 감로수 맛과 같은 것으로
이를 아귀들에게 보시하니 모두 다 마시고 주린 배를 채울지어다.
☞ p. 16

어떤 수행자가 열심이 좌선을 하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본 스승격인 선사(禪師)가 물었다.
“좌선을 해서 무엇 하려는가?” “예, 부처가 되려고요.”
“그래, 부처가 되겠다? 흠.” 이튿날이었다. 수행자가 좌선하는 방 앞에서 그 선사가 숫돌에 무언가를 열심히 갈고 있었다. 수행자가 다가가서 보니 기왓장이었다. 의아하게 생각한 수행자가 물었다.
“스님, 기왓장을 갈아서 무엇 하시게요?” 선사가 대답했다.
“기왓장을 갈아서 거울을 만들려고 하네.”
“예? 아니, 기왓장을 갈아서 거울을 만드신다니요? 그게 말이 됩니까?”
“그래, 말이 안 된다고? 그럼 자네는 좌선만 한다고 해서 부처가 될 줄 아는가?”
그 순간 수행자는 정신이 퍼뜩 들었다. 앉아만 있는다고 부처가 될 수 없듯이, 기도만 열심히 한다고 해서 기도가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먼저 자신의 본래면목(本來面目, 인간이 갖는 본래 그대로의 심성)부터 잘 관찰하고 자신의 업장을 참회하고 비움으로써 기도를 성취할 수 있는 것이다. 이것은 신앙적인 차원만이 아니라 일상생활에서도 마찬가지다.
☞ p. 41-42

동안거를 마친 도반 스님 두 분이 다녀가셨다. 서걱거리는 풀옷에 걸망을 짊어진 그들의 행장에서 수행자의 참모습을 보는 것 같아 기분이 상쾌했다. 그들에게서는 푸른 소나무 향내가 났다. 그 도반 스님들이 솔향기만을 남긴 채 떠나간 뒤, 가슴이 시려왔다. 나도 그냥 어디론가 훌쩍 떠나고 싶었다. 그래서 그냥 구름처럼 물처럼 흐르고 싶었다. 푸른 솔향기 짙은 곳에서 잠시 쉬었다가 다시 길을 떠날 수도 있을 것이다. 그것이 수행자의 모습이다. 어느 한 곳에 집착하여 머물지 않는 것, 그리하여 물이어야 하고 구름이어야 하며 산이어야 한다. 그래서 수행자는 산에 깃들어 산다. 초기 불교에서는 수행자를 ‘집 없는 사람, 숲에 머무는 사람’이란 뜻으로 비구(比丘)라고 하였다. 비구는 산과 물을 빌려서 먹고 산다. 그래서 산수걸인이다
오늘 나는 또 머리를 깎았다. 파랗게 밀어낸 머리를 만져본다. 그리고 회색빛 승복을 거울에 비춰본다. 나는 산수걸인이고 싶다.

산 개울물은 한순간도 멈추지 않고
쉼 없이 흐르면서 내려간다.
바라문아.
이처럼 사람의 삶도
실개울과 같아야 한다.

- 《잡아함경》 중에서 - ☞ p. 46-47